며칠 전 동아일보에서 ‘[책의 향기]파산이 예정된 청년들, 너무 성긴 안전그물’이라는 기사를 봤다. 제목부터가 쇼킹했다. ‘파산이 예정된 청년들’이라니. 마치 청년이라는 나이가 곧 파산으로 가는 티켓인 양 들렸다. 사실 나도 30대 초반 직장인으로서 비슷한 불안을 느낀 적이 많다. 언제든 실직할 수 있다는 불안, 주거비와 생활비에 치이는 현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런데 이 기사가 다루는 책은 그 불안을 더 구체적으로 파고든다.

책 제목을 찾아보니 한겨레에도 관련 기사가 있었다. ‘[청년을 파산으로 모는 사회…다시 일어설 기회를]’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두 기사 모두 같은 책을 소개하는 것 같았다. 내용을 종합해보면, 책은 청년들이 왜 빚에 허덕이고 파산 위기에 놓이는지를 구조적으로 분석한다.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안전망의 부재 때문이라는 분석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취업 실패나 불안정한 일자리, 높은 주거비, 부실한 사회보험 등이 겹치면서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나는 문득 몇 년 전 직장 동료의 사례가 떠올랐다. 동료는 20대 후반에 스타트업에 들어갔다가 회사가 망하면서 실업급여도 못 받고 빚만 떠안았다. 그 후로도 계약직 여러 개를 전전하다가 결국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그 동료는 착하고 성실했는데,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당시에는 그냥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시스템 자체가 그를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20~30대 개인회생 신청 건수가 전년 대비 12% 증가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취업에 실패하거나 계약직 근무 중인 청년이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방증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겨레의 분석에 따르면 여성연대는 여성고용정책과 복원과 AI 노동정책에 젠더 관점을 반영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특정 계층만이 아니라 모든 청년에게 적용될 수 있는 접근이다. 노동시장의 변화에 맞춰 안전망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실업급여와 산재보험을 적용하고, 재취업 교육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또한, 최근 논의되는 ‘청년기본소득’이나 ‘주거 안정 지원금’ 같은 정책도 청년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독일의 경우 ‘청년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실패한 청년들에게 재도전 기회를 주고, 일정 기간 생활비를 지원하는 정책이 성과를 내고 있다.
두 번째로는 금융 교육과 상담의 확대다. 청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채무 상담 서비스가 필요하다. 많은 청년들이 빚에 허덕이면서도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모른다. 지역 사회나 대학 내에 상담 창구를 만들고, 법률 지원을 연계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청년 금융 생활 상담소’는 무료로 채무 조정과 재무 설계를 지원하는데, 2024년 상담 건수가 5000건을 넘었다. 하지만 이는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대학 교과 과정에 금융 리터러시를 필수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실제로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고등학교 때 신용 관리와 파산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다. 파산이나 빚을 개인의 실패로 낙인찍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회, ‘안전한 실패’가 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파산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신용 회복을 지원하고, 재기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미국의 ‘챕터 7 파산’ 제도는 파산 후 7년이 지나면 신용 기록에서 삭제되어 재기할 수 있도록 한다. 한국은 개인회생 후 5년이 지나야 신용 회복이 가능하지만, 그 기간 동안 취업과 주거에서 차별을 겪는 경우가 많다. 법원의 ‘면책 결정’ 이후에도 금융권에서 대출을 거절하거나, 일부 기업이 신용 불량자를 채용에서 배제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는 ‘낙인’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보여준다.
또한, 미디어의 역할도 크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파산을 부도덕한 행위로 묘사하기보다, 구조적 문제로 인한 결과로 다루는 콘텐츠가 늘어나야 한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파산의 시대’는 청년 파산의 실태를 조명하며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한국에서도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통해 생생한 사례를 공유하는 채널이 늘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결론적으로, ‘파산이 예정된 청년들’이라는 말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반영한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 앞에서, 우리는 더 두꺼운 안전그물을 요구해야 한다. 책에서 제기한 문제를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정책과 인식을 바꿔나간다면 청년들이 다시 일어설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을 위해 나도 블로그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꾸준히 나누고 싶다.